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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사  탄(Satan)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민족들은 연약하게 하였던 네가 어찌 땅으로 끊어져 내렸느냐(사14:12)
  나 예수는 교회들에 관한 이런 일을 너희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나의 천사를 보내었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며, 또 빛나는 새벽별이라.(계22:16)

  루시퍼의 죄악과 지옥으로의 떨어짐을 묘사하는 성경의 유일한 구절에서 대부분의 새로운 역본들은 루시퍼의 이름을 삭제하고 그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새벽별을 사탄의 분명한 정체를 가리우고 새벽별로 변개시켰다.
 

 

K J V

한 글 개 역 성 경

N  I  V

사 14:12

O Lucifer, son of the morning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
이여

O morning star

눅 4:8

Get thee behind me, Satan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삭 제

omitted



  • ?
    니플라오트 2007.08.17 00:37

    음.. 제 생각엔 최근 번역된 성경이 루시퍼를 새벽별로 변개시킨게 아니라 원래 루시퍼가 새벽별이라는 뜻이예요.. 루시퍼는 흔히 타락한 천사라고 하는데 저는 예전부터 도대체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어요. 성경에서 관련 구절을 한번도 읽은 기억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교회 전도사님이 이사야 14장 12절을 보여주면서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바로 루시퍼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아.. 그렇구나..'하고 본문을 읽어봤는데 제가 들어왔던 루시퍼 천사 이야기는 전혀 안나오고 바벨론 왕을 향한 경고만 나오는겁니다. 궁금한건 못참는 성격이라서 일단 히브리어 성경(맛소라 본문)을 봤습니다. (저는 맛소라 본문(히브리어), 탈굼역(아람어), 70인역(헬라어), 불가타역(라틴어), LUT역(독일어), KJV, NRSV, NIV, 공동번역, 한글KJV, 개역한글, 개역개정, 새번역을 항상 대조하여 봅니다. 컴퓨터로 한 화면에 다 나오도록 설정해두어서 그렇게 볼 수밖에 없어요.)

    히브리어 본문에는 '헬렐 벤-샤하르'라고 적혀있더군요. 헬렐은 'a shining one'이고, 벤은 'son', 샤하르는 'dawn'의 뜻입니다. 즉, 제가 직역하니까 '새벽의 아들 광명체'였습니다. 탈굼 역본을 보니 별이라는 뜻의 코카브 어쩌구 적혀있었습니다.(아람어는 잘 못읽어요;) 그리고 헬라어 역본을 보니 '에오스포로스'였습니다.(에오스포로스는 역시 새벽별이라는 뜻이고, 그리스 신화에 에오스라는 여신의 자녀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것은 라틴어역인 Vulgate역에서 lucifer라고 적혀있더군요. 제롬이 라틴어로 번역을 하면서 lucifer라고 번역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증폭되었습니다. 왜 '헬렐'을 'lucifer'라고 써놓았을까? 그런데 알고보니 라틴어의 lucifer 역시 새벽별이라는 뜻이더군요;; (오늘날 영어로도 lucifer가 샛별, 금성, 사탄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구요.) 백과사전에는 <누가복음의 10장 18절에 있는 "나는 사탄이 번갯불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라는 구절과 맞아떨어지면서 사탄의 고유명사로 쓰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결국 제롬은 어떤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헬렐', '에오스포로스'를 똑같이 새벽별의 뜻인 lucifer로 번역을 한 것이더군요.. 하지만 여전히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그게 왜 사탄의 기원이 됐을까의 의문이죠.

    그래서 이것저것 배경조사를 많이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로마카톨릭 시대 즈음에 생겨난 신화라는 것입니다. 그 전통이 이어지면서 오늘날까지도 그런 이야기가 간간히 전해지는 것 같구요. 지금은 위경으로 분류된 에녹서에 7천사가 나오면서 타락한 천사로는 루시퍼, 아사셀, 벨리엘 등이 나오더군요. 하지만 이 역시 그리스-로마 시대에 만연했던 별과 관련된 신화에서 영향을 받아 혼합된 이야기였습니다. 너무나 유사한 점이 많더군요..

    아무튼 제 생각엔 기독교가 카톨릭에서 분리되어 나오면서 그런 신화적 요소를 제거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번역하는 성경에는 원래 히브리어에 적혀있던 '헬렐'의 뜻 그대로 광명체, 새벽별 등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보여요.. 사실 문맥상으로만 봐도 그 구절에서 사탄을 이야기할 이유가 없어보이더군요. 단순히 부귀영화를 누리던 바벨론 왕의 타락과 멸망을 책망하는 내용인데 말이예요..

     


    그리고 누가복음에 나오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고의로 삭제한 것이 아니라 번역의 기준으로 삼은 '헬라어 원문'에 그 내용이 없기 때문이예요. 물론 개역 성경이 틀린 곳이 많긴 하지만, 삭제되었거나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KJV는 안디옥 사본을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그 사본에는 그 구절이 나와있나보네요.. (안디옥 사본은 구할 수가 없어서 확인 못해봤어요.) 개역한글이든 새번역이든 KJV와 비교해서 삭제되었다고 하는 부분들은, 번역하는 과정에서 고의로 삭제한게 아니라 번역 대상으로 사용한 원본 텍스트 자체에 그 내용이 없는거예요. 다시 말해 채택한 원문 본문 자체가 틀려서 그런 것입니다. 요즘은 번역할 때 수많은 사본들을 연구해서 신빙성 있고 원본에 가깝다고 여기는 것들만 채택합니다. 사본 필사 과정에서 삭제된 것도 있을 수 있지만, 반대로 고의로 추가된 부분도 있으니까요.. 언어학적으로 원어를 분석해서 최초 원본 기록 당시에 사용될 수 없는 언어나 문체를 발견하면 후기에 첨가된 것으로 봅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쓰여진 글에 컴퓨터라는 단어가 있다면 그건 후기에 첨가된 것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후기에 첨가되었다는 증거를 발견하게 되면 그 내용이 추가되지 않는 본문들이 원본에 가깝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내용이 없는 본문을 채택하는 거예요.. 결국 어떤게 원래 원본에 가까울까를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해서 반영되는 것이고, 지금도 그 연구와 노력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성경은 그 밝혀낸 것들을 반영하여 새롭게 번역해야만 하는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개역성경은 엄청나게 틀린 곳이 엄청나게 많아요. 'KJV'가 '개역한글성경'보다 확실히 더 낫습니다. 예전 사본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래도 직독직해를 했기 때문이죠.(KJV한글번역은 2차 번역이지만요.) 개역한글, 개역개정은 옛날 사본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직독직해하지도 않았고 수차례 개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정확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물론 개정하면서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있더라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KJV가 얼마나 획기적으로 잘 번역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저 또한 KJV 번역을 엄청나게 많이 참고합니다. ^^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최근에 한국성서공회에서는 새번역 성서(구. 표준새번역)를 번역하기도 했어요. 기존 교회에서 '정통성'을 무시한다고 해서 아직 두루 읽히고 있지는 않지만, 구약학을 공부하고 원어를 읽을줄 알고 성서사본의 역사를 공부한 입장에서 보면, 정말로 정확하게 번역하려고 노력했다고 보이는 책입니다. 물론 오늘날 학계에서 권위있게 여겨지는 원문에서 직독직해를 했구요. 최신 연구 결과들이 다 반영되어 있습니다. (한 예로 모음 표기를 몰라서 임시로 '여호와'로 표기했던 원래 이름이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서 '야훼'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새번역에 이를 반영하여 처음에는 야훼로 표기하려고 했다가 기존 한국교회에서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유대 전통에 따라 '주님'으로 표기했어요..)

    저는 완벽한 성경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믿음이 부족한 것일까요.. 진짜 냉정하게 생각하면 정말 잘 번역되었다는 KJV도 역시 1600년대 당시의 고고학적인 발견과 연구를 집대성하여 번역된 성경으로만 생각되어요.. 지금도 새롭게 밝혀지는 것들이 많은데 그것들은 다 쓸데없는 노력일까 싶기도 하구요.. 성령님께서 KJV라는 성경을 번역하기까지 인도하시고, 그 성경이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더이상 성경번역에는 간섭하지 않으시는걸까요..

    일단 제가 생각하는 성경을 가장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은, 현존하는 모든 원문 사본을 대조하며 읽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일반인이 취할 수 있는 차선책은 KJV, RSV 등등 권위있게 받아들여지는 영어 번역본들을 대조하며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구요.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나라 성도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KJV, 개역개정, 새번역 등의 성경들을 대조해가면서 읽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원본을 읽지 못하더라도 각각의 사본의 차이점을 알 수가 있고 '이것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기도 하구나..'라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예요.

  • profile
    솔로몬 2007.08.17 00:37
    헬라어에 관해서는 제가 잘 몰라서 리플라오트 님에게 의미있는 의견을 드리기 힘들군요...
    만약 기회가 있다면 저의 교회에서 이 부분에 관해서 답변을 할 수 있는 분과 토론 할 수 있는 기회를 갖어 볼 수 있을 겁니다.   제가 헬라어나 히브리어를 공부해 볼 만한 기회 없어서 잘 모르지만 다른 분들이 적어 놓은 책자를 보면서 논리의 전개과정을 통해서 굳이 헬라어 히브리어를공부하지 않아도 킹제임스 성경만으로도 하나님을 말씀을 오류없이 배울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결정을 하게 되었죠... 물론 지금도 제가 알 고 있는 결정에 문제가 있다면 더 많은 지혜를 얻고 싶습니다..

    아마도 리프라오트님에게 지금 해드릴 수 있는 소견은 하나님께서 자신 보다 높이신 말씀에 확실 한 권위를 두어도 좋다는 저의 판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오류없이 "보존"(원본이 아니라)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에 100% 신뢰를 갖는데서 저의 믿음에 기본을 두는 것 입니다.
    만약 완벽한 성경이 존재 하지 않는다면 제 소망또한 불확실해지겠죠...

    오래된 사본이 더 정확하다고 하는 것이 논리의 추정이 될 수 는 있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더 오래된 원본에 권위를 둔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자체에 권위가 있는 것이아니라 오래된 원본자체가 권위가 되겠죠...

    창세기에서 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의 변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이브가 뱀과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인류가 살아온 이래로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변개되는 과정이 있어왔던 것이죠.. 대표적인 것이 오리겐학파에 의한 것으로 알 고 있습니다.. 70인역등...

    어느 원본에는 있고 다른 원본에는 없는 구절이라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나 삭제된 원문과 보존된 원분 어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원문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위 누가복음의 경우에도 대다수의 사본에서 보존하고 있도 소수의 사본에만 삭제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다른 삭제된 부분에 관해서 준용해 볼때 그렇다는 저의 판단입니다...)

    예를 들어 90%사본에는 위 그절이 보존되어 있고, 10% 사본에는 삭제되어 있다면 보존하는 것이 상식일 것입니다.  그렇지 한고 소수의 사본이 삭제되어 있다고 해서 삭제를 했다면 번역의 기준된 사본을 잘 못선택했다는 것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성경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헬라어나 히브리어의 사전적의미에 깊은 의미를 둔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경적의미를 놓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소망"이라는 단어만 봐도 그렇습니다..  "소망"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이루어 졌으면 하고 바라는" 뜻일 겁니다... 즉 다시 말해서 안 이루어 질 수도 있다는 뜻을 포함하죠... 하지만 성경에서 "...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라고 할때 이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지 "가능성"에 관한 의미가 아닙니다...

    훗날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은 가능성에대한 교훈이지 꼭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오래전 한글 원본의 "소망"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피력한다면...
    우수운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헬라어 히브리어의 사전적의미로 접근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에 신뢰를 하게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학자의 말에 신뢰를 두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균형있는 접근을 위해서 학문적 연구도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확실한 권위가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제 지식이 짧아 좀더 실체적으로 설명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가 형제님께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

    파스카(유월절)의 의미도 생각해 보면 킹제임스 성경이 그 의미를 이스터라는 단어로 구체화시켜서 번역해 놓은 것은 결국 킹제임스 성경이 최종권위가 될 수 있다는 의미와 연관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의 의미를 더욱 정확하게 만든 것이죠...

    저도 킹제임스 성경을 선택하기까지 많은 책을 보긴 했지만.. 역시 스스로 글로 답글을 쓰려니 모르는게 너무 많네요.. 기억도 안나고....

    리프라오트님 덕분에 마음이 새로와 지네요...
    감사합니다... ^^
  • profile
    솔로몬 2007.08.17 00:37

    아고~  요즘 제가 리프라오트님때문에 긴장이 바짝됩니다...^^

    우선 양해를 구할 것은 이 곳에 올려 놓은 글들은 제가 직접 작문한 것이 아니고 교제권 안에 있는 다른 분들이 이슈가 되는 부분에 관해서 이미 올려 놓은 글 중 제가 개인 적으로 필요하거나 혹 함께 공유하면 좋을 것 같다는 글을 옮겨 놓은 글들이 대부분입니다..
    다소 문체가 제 스타일과 다르게 표현된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진리가 사랑으로 이야기 되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킹제임스를 사용하는 진영에서 개역성경을 사용하는 쪽을
    지나치게 비판을 하는 경향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일부 문체에서 상대방을 조롱하는 듯한 문제가 있는 것은 제 의견이 아니니 양해해 주세요..^^

    리플라오트님께서 정확히 킹제임스진영의 의중을 잘 정리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킹제임스 진영에서는 말씀의 원본에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킹제임스 진영은 "말씀의 보존"이라는 측면에 믿음을 두는 것이죠...

    그리고 성서고고한 원문비평학등 우리가 각분야에서 학문적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에대해서도 이의를 다는 분이 없을 것으로 봅니다..

    단지 연구의 방향이나 결론이 하나님의 말씀의 질서에서 벗어난다면
    그 것을 우려하는 것이겠죠..


    형제님께서 마지막에 질문하신 부분은 제가 다른 분들께 물어서라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
    니플라오트 2007.08.17 00:37

    제가 집사님 홈페이지에 와서 너무 제 얘기만 늘어놓은 것 같아서 송구스럽습니다. 다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저에게나 집사님에게나 좀 더 생각해볼 수 있고 좀 더 견고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집스럽게 제 고집을 늘어놓기 보다는 저도 많이 배우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

    일단 제가 글을 남긴 첫 이유는 글의 문체의 문제였어요.. '파스카'에서도 그렇고 '루시퍼'도 그렇고 '시님'도 그렇고 마치 개역성경이 일부러 고의적으로 뜻을 변개시켰다는 글의 흐름이죠.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짜로 개역성경이 뭔가 눈을 가리우기 위해서 일부러 지운 것 같은 늬앙스를 풍기잖아요.. 이사야의 새벽별과 요한계시록의 새벽별은 원어부터 다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별이라는 단어와 새벽이란 단어가 따로 분리되어 있거든요.. 정확하지 않은 이유 들어서 너무 공격적인 글이길래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요즈음 그렇게 번역이 되고 있는 이유를 알려드린 것이에요. 저는 개역성경이 절대 KJV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개역성경을 대변할 생각도 없어요. 다만 틀린 이유는 바로 잡고 이쪽 입장도 알고 저쪽 입장도 정확하게 알아야만 같은 글을 쓰더라도 힘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이스터의 경우도 저는 이스터로 해석했다고 잘못되었다고 말한 것은 아니구요, 말씀하신대로 KJV가 구체화를 잘한 것이지 다른 번역들이 고의로 유월절로 변개시킨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들도 파스카가 이스터의 뜻으로 쓰인 것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원래 적힌 글대로 적는 것을 택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배우는 것이예요.. 히브리어의 문법을 비롯하여 수많은 표현과 글의 습관, 어투 이런 것을 공부하면서 훨씬 더 원래 뜻을 알기가 쉬워집니다. 우리나라의 속담 '작은 고추가 맵다'를 처음 들어보는 외국 사람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듯이, 원어의 글의 흐름과 글쓴이의 사상, 습관을 모르면 정확한 뜻을 알수가 없습니다. 외국 사람이 한국어를 배오구 한국 문화를 이해해야 알 수 있듯이 원어를 알고 원어의 문체나 표현을 알아야지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원어를 배우면서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잘못 쓰인 부분들, 뜻을 몰랐는데 최근에 밝혀진 부분들 등등 전반에 걸쳐 모두 공부합니다. 제가 그것들을 다 적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원어를 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을 못드리는 것이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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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에 오타가 있어서 수정하려다가 글이 지워졌네요;; 번호 오류가 자꾸 나는 바람에..
    앞부분을 워드에서 써놓은게 있어서 붙여넣습니다. ^^;;

  • profile
    솔로몬 2007.08.17 00:37
    아고 그 사이에 리플 하나가 삭제 되었군요..
    마지막 질문 부분을 알 수가 없어져네요...

  • profile
    솔로몬 2007.08.17 00:37
    ㅎㅎㅎㅎ 리플은 수정기능이 없어서.. 간혹 저도...^^
  • ?
    니플라오트 2007.08.17 00:37
    제가 최종적으로 질문드렸던 것만 다시 쓸께요.. ㅠ 다름이 아니라 맛소라 본문에서의 틀린 표기 문제입니다. KJV는 벤 하임 맛소라 본문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벤 하임 본문이 맞느냐, 벤 아쉐르 본문이 맞느냐의 문제는 '본문 보존에 대한 믿음' 앞에서는 어짜피 소모적인 논쟁이기 때문에 넘어갈께요.. 어쨌든 문제는 맛소라 본문에 '틀린 곳'이 있다는 것이예요.. 키텔은 본문의 좌우측과 아래쪽에 그 틀린 곳에 대한 설명을 기록해두었습니다. <몇 번째줄 몇 번째 부분에서 A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는 A'가 맞다.> 이런 식으로요.. 저번에 말했던 여성 대명사가 들어갈 부분에 실수로 점을 잘못찍어서 남성 대명사로 표기되어 있다거나 이런 것들입니다. 직접 원문 성경 들고 가서 일일히 찾아가며 보여드릴 수 있어요..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아래에서 100% 실수 없이 말씀이 보존되고 원본 그대로 정확하게 전승되는 것을 믿는다면 이런 실수도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

    그리고 제가 교회 홈페이지에 가서 킹제임스 자료실란을 읽어보았습니다. 보니까 주내용은 헬라어 성경 다수 필사본이라고 하는 Textus Receptus가 유일한 완전한 본문임을 말하고 있더라구요.. (에라스무스가 편집한 TR 본문이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문적 결과에 회의를 가지신다면 역시 소모적인 논쟁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은 왜 '구약 원문'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신약 필사본은 아시다시피 5400여개 이상의 사본들이 있고 그만큼 지금도 엄청나게 논란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떻게 보면 구약은 뻔합니다. 필사본 자체도 그렇게 많지 않을뿐더러 어느 것이 원본에 가까운지 더 밝히기가 더 쉽습니다. 오래되어서 권위가 있다는 것 역시 거의 구약 히브리어 본문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전승과정이 비교적 단순하고 또 잘못 필사된 부분이 어느 곳인지 찾아내기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도 KJV가 채택한 구약본문인 '벤 하임 본문'에 대해서 더 할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구약 필사본에 대해서는 도통 말하는 바가 없으니 난감합니다;; 구약 필사본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또 KJV가 신약 헬라어 사본 중 95%의 필사본과 일치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도 잘 이해가 안가요.. 혹시 TR 내에서의 95%를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필사본의 95%가 TR이라는 말인가요? 5400개 중에서 5130개의 사본이 일치한다는 말인가요? 5130개의 사본이 똑같다는 것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왜곡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일뿐더러 만약에 정말로 5130여개가 완전히 일치한다면 5%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진짜 바보이고 어의없는 사람들인 것 같네요. 그 5%를 주장하는 사람은 두각을 나타내기는 커녕 매장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사악한 생각을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글의 흐름 자체가 모든 정보를 낱낱이 공개하기보다는 옳다고 믿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소수의 정보를 부풀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공격적이며 배타적인 것 같아요.. 외부에서 공격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긴 합니다. 그래도 이 글만 읽고서는 도저히 객관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것 같아요...

    제가 좀 까칠하게 글을 쓴 것 같지만 궁금한건 잘 못넘어가는 성격이예요.. ㅠㅠ 이해해주시리라 믿어요.. 제가 알고 있는 지식 역시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는 보잘 것 없는 것인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저마다 주장하는 바가 다르니 자꾸만 혼란이 옵니다. 사방에서 자신들이 옳다고 말합니다. 안상홍 증인회,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제7일 안식교 등의 교인들과도 종종 토론을 해보았지만, 그들도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더라구요.. 그들 역시 성령님이 자신들을 이끄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는 몰몬경이 발견되고 보존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더군요..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가 없었다면 어떻게 자신들이 지금까지 존재하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냐면서 오히려 저를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그들을 설득을 하려고 해도 그들은 사탄의 방해쯤으로만 생각하더군요.. 정말 혼란스럽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것은 우리가 신앙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이고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믿음'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는 '신학적인 노력'을 가리우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신학적인 노력 위에 믿음이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믿음만 가지고는 어떤 말이든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요.. 만약 어떤 사람이 "한국 교회에서 오늘날 가장 많이 읽히는 것이 개역성경이다. 이것이야말로 성령님이 인도하신 결과이며 개역성경이 완전하다는 증거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가 안갔던게 이 부분이예요.. 일단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해둔 다음에 그것에 대한 우수성을 설명하는데 학문적 성과와 이론들을 총 동원해요. 그런데 그 우수성에 반대되는 학문적 성과들은 그것의 다수의 의견인가 아닌가에 상관없이 사탄의 속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더라구요. 그냥 그 이론이 틀렸다고 하면 될텐데 왜 굳이 사탄의 활동이라고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도 어짜피 나름대로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말이지요.. 네이버 검색을 하면서 몇몇 논쟁글들을 읽어보았는데, 학문적으로 실날하게 비판을 받게 되면 꼭 그렇게 말을 하더라구요.. 건설적이고 학문적인 반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자, 사탄에게 속고 있는 자들로 치부하면서 인신공격 수준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주로 말씀 몇 구절을 들어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100% 보존된 것이 분명하다는 믿음을 강조하더군요. 그러면서 개역성경이나 다른 번역본의 틀린부분을 지적할 때는 태도가 돌변하여 원문 비평까지 하면서 공격하는 것에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마치 유리한 것만 취하고 불리한 것은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아시다시피 저는 KJV의 우수성을 반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여기저기 적혀있는 글들이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KJV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람이 작성하는 글이다 보니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이 있고 그러다 보니 실수를 할 수도 있겠다 생각이 됩니다. 저는 사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얼마든지 제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구요.. 제 나약함과 부족함을 철저하게 느낄 때가 많으니까요.. 아무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부족한 말을 잘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 profile
    솔로몬 2007.08.17 00:37

    제 능력상 당장 답변드릴 수 없는 부분은 나중에 저도 저보다 그 부분에대해서
     
    잘 아는 분의 도움을 받아서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쪽 부분의 궁금증에 대해서는 저도 무척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저마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내가 믿는 이 믿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 건지...
    나 자신 조차 잘 못된 논리의 아집 속에 붙들려서 나와 다른 것들을 틀리다고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런 고민을 해 왔고 지금도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아담의 본성은 끝까지 자신의 아집을 쉽게 버리지는 못하겠죠...

    저는 고등학교때 부터 순복음 교회를 다니게 되어서 은사주의에 관한 경험을 하고 회의를 많이 느꼈습니다..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는 말씀과 믿는자에게
    능치못함이 없다는 말씀으로 병을 고치고 부자가 되고 하는 등의
    기적과 체험에 많은 비중을 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안상홍 몰몬교등의 교리에대해서는 제가 잘 몰라서 막연하게
    이단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지만 은사주의라는 것은 제가 경험해 보았던 것이라
    때론 누구나 자신이 믿는 것을 나름대로 논리를 갖고 믿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몇가지 여담을 통해서 제 의견을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첫번째 여담입니다...

    제가 몇년전 온라인 상에서 어는 분께 메일을 보내드릴께 있어서
    형제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해서 그 분의 이메일을 물어봤습니다.
    그분은 저보다 두세살 위였던 것으로 압니다.

    그랬더니 금방 그분께서 쪽지를 보내와서 자기보다 나이어린 사람에게 형제라는 호칭을 듣는게 불쾌하다고 하시면서 집사라는 호칭을 사용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쪽지를 보내 정중히 사과를 하고 다음부터는 집사님이라고 호칭을 하겠다고 쪽지를 보낸적이 있습니다..

    기존 제도권교회 형제 자매님들이 저를 집사님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저는 교회에서 집사라는 직분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결혼한 성인에게는 집사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문화로 자리잡은 듯합니다..

    두번째 여담입니다...

    제가 상가집에가서 상주와 교제를 나눌때면 돌아가신 분이 구원을 받으셨나는 질문을 해봅니다.. 그러면 간혹 상주분 중에는 구원받았다는 표현대신 "그럼요 저희 누구누구는 교회 집사님이셨는데요..."라는 답변을 받습니다..

    세번째 여담입니다....

    몇년전 길에서 무료성경공부를 해준다며 테입을 나눠주길래 찾아 가서 공부를 해 본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 나가다가 이상해서 알고 봤더니.. 이만희 신천지 장막 선교단 사람들이더군요...

    아담과 이브가 최초인간이 아니라고 하고 요한 계시록의 두 증인이 한사람은 요한이고 다른 한사람은 또있다면서 알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마도 또다른 한분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누군가와 연결시키려는 것이 아난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이렇게 여담을 한 것은 자신이 주장하는 많은 논리들이 있지만 이 모든 주장이 얼마나
    성경적으로 근거를 갖고 있으며 균형있는 교리를 갖고 있는냐 입니다..

    많은 신학을 하시는 분들 조차도 정작 성경에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고백을 듣곤 합니다..
    (겸손함 일수도 있을 겁니다.. 저도 잘 모르구요..^^)

    첫번째 여담은 성경은 분명히 예수그리스도를 맏형으로해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모두 형제자매가 된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만
    집사직분도 없는 사람을 나이가 많다고 해서 집사라고 불러야 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집사라고 부르거나 불러 달라고 할 자유는 있겠지만 다른 사람보고 자신을 집사라고 불러달라고 강요하는 것은 논리의 근거가 성경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습이 성경적 교리에 앞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또한 집사라는 호칭이 교리적으로 틀리니 형제라고 부르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저에게는 모든 것이 자유롭지만 다른다람들의 믿음을 세우는데 방해가 된다면 제가 갖고 있는 자유를 포기할 자유도 있기때문이죠..

    구원 받은 우리가 한번에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알아가며 성장해 가고 있는 중에 있는 것이죠..
    서로가 사랑으로 진리를 말할 수 있다면 조금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세상사람보다도 더 서로에게 잔인해 질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물론 거짓 교리를 말하거나 세상의 관습을 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무력화 한다면 그 것에대해서는 냉정해야 할겁니다..

    두번째 여담은 구원에 관한 교리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거나 한국의 정서상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답변을 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제가 말하려는 의미를 이미 앞서서 알고 계시겠지만

    ...
    "집사, 권사, 장로"라는 호칭은 구원을 보장해 주는 열쇠가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집사라는 호칭이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과 기독교는 철저한 계약적 문화입니다. 계약서에 토씨하나 잘 못되면 어떤 법적 책임을 져야 할지 모릅니다..

    한국의 온정주의적 정서에서는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고 좋은게 좋은 거라는 식의 표현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약서를 쓰는 회사나 국제적 관계에서 단어 하나 문구하나가 정말 중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서 피값으로 우리를 사시는 과정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스스로 모순이 되지 않게 하기위해서 공의로움으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냥 죄가 없다고 한다고 하면 사랑은 있겠지만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공의로움을 위반하시게 되는 것을 용납하 실 수 없었던거죠..

    어떤 분이 교회 열심히 다니셨다고 해서 우리가 그 분을 위로하기위해서 "교회 열심히 다니셨으니까 천당가실 거에요!"라고 답변을 한다면..
    위로의 이말이 그분의 구원을 보장 할 수 있나요..?
    구원은 교회를 많이 다닌다고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게 그거지 하고 한다면... 정서적으로는 공유할 수 있지만 공적이고 계약적인 문화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말이 성경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목사라해도 위대한 성인이라해도
    그 것은 신뢰 할 수 없는 것이겠죠...
    사람은 다 거짓말장이 이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여담은 이단 교리가 생성되는 과정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 입니다...
     
    성경에서 자신이 필요한 구절만을 갖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단은 잘 모르니 제가 경험했던 이만희 쪽을 예를 들었습니다.

    창세기 1장을 세상의 창조가 아니라 한 민족의 탄생으로 보는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한 것을 이사야서 60장을 예로들며 이 빛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의미한다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리고 아담은 그 당시의 민족의 대표였다는 겁니다... 즉 아담 말고도 다른 인간이 있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 정도의 거짓 교리들은 성경에대해서 조금만 알 고 있어도 진위를 구분하는데 어렵지 않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모든 인류의 죄가 아담으로 통해 들어 왔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 되지 않겠습니까?

    많은 이단 교리들이 더욱 정교하게 논리를 가장 한다면 구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겠지요... 그럴수록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균형있게 이해하고 읽는 것이 더욱 중요할테고요..

    곁들여서 말씀드리면 기록된 성경 말씀 이외에 사적계시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은 더욱 분별하기 쉽지 않겠습니까?  자신에게 사심이 없다면요...

    누군가 저에게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당신을 선교사로 내보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면....
    또는 무었을 하나님께 바치면 네 믿음을 시험하고 아내의 질병을 고쳐 준다고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면...

    이런 사적계시를 다 받아들여야 한다면 정말 무한한 종류의 이단이 존재하겠죠..

    그래서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 1장 19절에서 자신의 여러가지 신비한 체험에도 불구하고 대언의 말씀이 더 확실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즉 기록된 성경이 자신의 신비한 체험보다도 더 중요하고 확실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더 많이 있겠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감지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위와 같이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관습을 내세우거나,
    성경의 교리를 잘 이해하고 있지 않거나,
    성경을 자신의 입맛대로 인용하고 사적계시를 이용해서 자신의 논리기반으로 삼는 것이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의 믿음의 선조 분들께서 이미 성경이 얼마나 위대한 책인지를 기록(책자)으로 많이 남겨주셨고

    이러한 책들을 통해서 지금까지 모순처럼 느껴졌던 많은 개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이런한 교리적 해석을 확실하게 뒤받침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성경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생각은 우리의 사적견해가 아니고 성경이 그렇게 하신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교리는 성경을 통해서 성경으로 대답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록되었으되..."라고 하면서 하나님의말씀으로 답변

    을 하고 계신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우리 목사님이 말씀하시길..."
    "내 생각에는......"
    "유명한 학자가 말하길..."

    이 아닙니다..

    이 정도의 분별력만 생길 수 있을 정도록 성경을 이해한다면 90%

    이상의 이단을 분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잘못된 성경을 들고 있다면 답변이 어려워 집니다...
    예수님도 계명성이고 루시퍼도 계명성이라면...
    기록의 의도가 순수하고 문제가 없다 하더라고 더 많은 설명을 해야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여호와의 증인들이 삼위일체와 관련된 구절을 삭제해서 사용하는 성경을 갖고 있다면...

    누군가 성경에 예언 되어 있지 않은 성경을 사적으로 계시를 받아서 추가로 성경을 갖고 있다면....

    이 모든 것은 학문적논리로 분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분별될 수 있는 것이죠...

    마귀와의 싸움에서 우리의 무기는 기록된 말씀인데
    저마다의 사견으로 불확신한 성경을 갖고서 싸운다면
    무기가 제대로 발사되질 못하겠죠...

    오류없이 바른 성경은 제 생명을 걸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이 바르지 않다면 저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 조차 불확실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저의 개인적인 신념이 아닙니다...
    성경이 그렇게 해도 좋다고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즉 내가 말하고 내가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그 것은 아무 보장도 받을 수 없는 것이죠...


    어떤 이단은 지옥을 없애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 들이 보는 성경으로 그 것을 입증 할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면 성경이 얼마나 확실해야 하는지 저의 간절함이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른 성경 바른 교리가 저에게는 생명이상으로 중요하게 믿고 있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한글 개역성경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시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도 오류가 있다는 정도의 의견이라면(사실여부는 잘 모르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선택한 제 선택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역성경의 써야 한다면 그 것은 본인의 결정을 따를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다른 구체적 사안에 대한 질문들은 제가 좀더 알아 보겠습니다..

    리플라오트님의 의견에 감사드리고 제 답변이 부족한 것은 제가

    아는 부분이 충분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

    제가 저의 일방적 주장을 한 부분이 있다면 제 개인의 간증 정도

    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개인의 신념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궁금하고

    모순된 부분들을 서로 선의의 토론을 통해서 진리를 알아가는 것

    이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소모적일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저에게도 좋은 학습과정이 될 것 같습니다...

    리플라오트님의 글이 저에게 까칠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읽도 도전받고 있습니다

  • ?
    니플라오트 2007.08.17 00:37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한 가지 언급을 하자면, 예수님도 계명성이고 루시퍼도 계명성이라는 말이 아니라 이사야에 쓰여있는 계명성 자체가 애초에 사탄과 관계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예요.. 맛소라 본문에 분명하게 적혀있는 '헬렐 벤-샤하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교리, 전통'과 '말씀의 정확성 자체'에 대한 판단은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교리도 사람이 만들고 전통도 사람이 세운 것이니까요.. 형제님(집사님이 아니신지 몰랐어요. ^^)이 말씀해주신 이단들의 어긋난 교리, 또는 기존 교회들의 잘못된 전통을 지키고 있는 모습에 관해서 깊은 동감을 합니다. 세례와 성만찬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구요, 오히려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가 기존 교회보다 제대로 된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더군요.. 교리가 틀리고 전통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판단하는 것 또한 학문적인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을 형제님도 동의하실거예요. 사실 형제님이 말씀하신 호칭 문제, 말씀의 변개 문제, 잘못된 교리 문제 등등 그것들 또한 이미 '학문적인 연구'를 근거로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계신거니까요.. 흔히 성경과 신학을 별개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신학이 곧 성경 연구라고 생각해요.. 조직신학쪽으로 간다면 올바른 교리형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성경을 파고 드는 것이고, 성서신학쪽으로 간다면 정확한 텍스트를 찾기 위해 성경을 파고 드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단지 '성경만으로' 파고든다면 인간은 자신의 논리의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말씀을 두고도 서로 틀리게 해석을 해버리죠.. 이단이 생성되는 이유도 같은 원리이죠. 저마다 '말씀을 파고들어서' 해석한 결과에 따라 자기 교리가 옳다고 말하는데, 그것을 틀렸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결국 '신학적인 작업'에 근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말씀, 즉 정확한 '텍스트'가 그 기준이 되어야 하겠지요..

    저는 기존 교회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말씀의 정확성'에 대한 시비 문제만 이야기 드린 것입니다. 저는 어느 한 교단에 속한 목회자가 아닙니다. 제가 신학생으로 머무르는 한 제 '양심'과 '생각'은 어떤 전통에 귀속될 수 없습니다. 어느 한 전통에 속하게 되면 그 순간 정확한 판단의 여지가 흐려진다고 생각해요.. 교리는 점점 더 정확하게 정립되어 가야 합니다. 그리고 전통은 그 세월이 오래될수록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항상 '개혁'되어야 합니다. 기존 교회를 비판하고 들어오신다면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봐도 개혁되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죠.. (저도 맨날 속으로 비판하는걸요..) 전통을 바꾼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습니다. 일부 신학자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혀도 이미 대형화된 전통 앞에서 무력할 때가 많아요. (개인적으로 신학자가 어느정도 선지자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바른 목소리'를 내면서 경고하는 것이지요. 만약 기존 교회가 참선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구약의 사건들 처럼 언젠가 큰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킹제임스를 보는 것에 대해서 절대 이견이 없습니다. 저도 항상 보고 있구요.. 그러나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는 서로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불만을 피력한 것은 네이버 검색하여 이에 대한 논쟁들을 보면서 그렇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일반인들이 논쟁한 것이 아니고 각계를 대표하는 신학자들이 논쟁하는 글이더군요.. 혹시나 제가 참고할 수 있는 논리정연한 글이 있다면 찾아주세요. 제가 미처 못찾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진리는 항상 검증되어야 합니다. 애초에 '신학'은 기존 교회의 신학이든 KJV의 신학이든 양심적 학자의 신학이든 간에 <인간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려는 노력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지금까지처럼 항상 '발전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논쟁글에 보니까 이 말에 대해 '진화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더군요. 완전한건 이미 주어졌다면서.... 예전부터 수없이 KJV에 관한 많은 논쟁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KJV의 우수성을 논리정연하게 입증하고 학문적으로 그것이 우수한 것을 입증하였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학문의 발전 앞에서 KJV의 우수성이 위기를 맞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학문적인 접근에 대해 적대시하고 믿음을 강조하고 다른 이야기만 하는 것처럼 보여요. 예전과 틀려졌달까요.. 직접 논쟁글 검색해서 냉정하게 읽어보시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지날 수록 신학적 작업에 따라 한 전통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른 목소리를 따르는 사람들도 생기고 거부하는 사람들도 생깁니다. 전통에 속해있는 입장에서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지요. 칼빈루터가 종교개혁을 했을 때 그를 따라간 사람도 있지만, 거기에 동의하지 않고 전통을 고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회에서도 분명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개혁을 시도하는 사람이 있을테고, 그를 따라가는 사람들과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KJV에서도 NKJV 등의 다른 목소리(그게 올바른 목소리든지 말씀을 파괴하려는 악한 목소리든지 간에)를 내는 목소리가 있을 수 있겠지요.. 결국 전통에 속한 사람들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많은 것을 정확히 알아보고, 양심적으로 판단을 하여 한 쪽을 따르는 것이지요.

    지금도 카톨릭은 엄청난 규모로 교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과연 카톨릭이 올바를까요, 개신교가 올바를까요? 카톨릭에서는 개신교가 틀리다고 말을 할 것이고, 개신교에서는 카톨릭이 틀리다고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어짜피 잘못된 전통들 투성이입니다. 제가 지나치게 부정적인 것일까요? 사회성이 없는 것일까요? 제가 원하는 전통들만 세우기 위해선 독립된 교단을 만들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 역시 세월이 지날수록 잘못된 전통을 형성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때문에.. 진리는 항상 검증되고, 항상 말씀에 비추어져야만 합니다. 어느 한쪽의 전통을 대변하는 교리나 말씀이 아니라 최대한 양심적이고 객관적인 말씀에 비추어져야만 합니다. 저에게는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하는 것'도, '특정한 믿음을 강조하는 것'도, '교리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것'도, '기존 전통을 공격하는 것'도 크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왜냐면 저마다 목소리가 틀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적으로 근거를 갖고 있으며 균형있는 교리를 갖고 있는냐"가 관건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무슨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성경 해석이나 강해를 들음으로 판단할 수 있는걸가요? 그게 아닌 것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각종 이단들도 항상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학문적 논리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록된 성경 말씀으로 분별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이전에 기록된 성경 말씀에 대한 검증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말씀드린 것들은 단순히 "학문적 논리"나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로 검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발굴되고 연구되고 있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고고학적인 증거'들을 바탕으로 한 연구 성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KJV측에서 말하는 것이 형이상학적인 논리전개에 가까워 보이는건 제 눈이 이상한걸까요?

    분명한건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하지만, 일단 '어떤 말씀이 정확한 말씀이냐'고 하는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판단 과정에서는 철저하게 (성령님이 올바른 말씀을 선택하는 것에 간섭하시리라 믿고) '학문적인 연구 내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짜피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그래왔습니다. 이제 와서야 그것을 두고 '인간의 헛된 노력'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상호 비방하는 것이 아닌 서로 건설적이고 양심적인 논쟁을 해야하는 것이지요..(물론 형제님에게 하는 말은 아닙니다. ^^) 몇 번 말씀드렸지만 킹제임스 성경이 우수한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고고학적인 노력, 오리지날 텍스트를 찾으려는 철저한 노력에 비추어 볼 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제가 말한 모든 것들은 어짜피 기존 교회 전통에도 반하는 것들입니다. 보수적인 교단에 이런 말을 했다가는 저 또한 인간적 잣대를 드리댄다고 엄청난 공격을 받겠지요..

    많은 신학자들이 성경에 관하여 잘 모른다고 말씀하신다고 하셨는데, 한편으로는 그 부분이 이해가기도 합니다. 신학은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정말 모르는 것 투성입니다. 어떻게 3차원에 머무르는 우리가 초월적인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그런 의미로 잘 모른다고 말을 한 것이라면 그 신학자는 정말 양심적인 것입니다. 잘 모르는 것을 마치 자신이 정확하게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교세를 만드는 것이 더 큰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더 심한 것은 자신이 계시를 받았다고 그것을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학문적인 철저한 검증 없이 자기가 해석하는 말씀이 정확한 해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게 비추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분의 섭리를 이해하는 것은 인류 평생의 과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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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길 2007.08.17 00:37

    저는 안성식 형제님께서 출석하시는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한 형제입니다. 니플라오트님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사 14:12절에 나오는 히브리 원어는 잘 지적하신대로 '헬렐, 벤 사카르'입니다. 이것을 '아침의 아들 루시퍼'라는 KJV의 번역은 정확한 것입니다. 그런데 NIV, NASB같은 성서들은 마치 히브리어로 '사카르 코캅, 벤 사카르'인 양 '아침(또는 새벽)의 아들 새벽별'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별을 뜻하는 '코캅'이라는 말은 본문에 나오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침'은 KJV에서와 같이 본문에서 한 번만 쓰였지 새로운 성서들에서와 같이 두 번 쓰이지 않았습니다. NIV번역자들은 코캅이라는 단어를 수십 번도 넘게 '별'로 번역했습니다. 아침 또는 새벽에 해당되는 단어 역시 수백 번도 넘게 그대로 번역했습니다. 새로운 성서들을 편집했던 분들은 '보게르 코캅'이 '새벽별'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욥 38:절에서는 그렇게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새벽별'이라고 말씀하고 싶으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단어를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단어는 '헬렐'이며, 이 단어는 구약 전체에서 단 한 번 등장합니다. '루시퍼'라는 단어가 KJV에 단 한 번 등장하듯이 말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에게있어 새벽별은 계 22:16, 2:18; 벧후 1:19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새벽별'로 말씀하고 있기에, 새벽별이 루시퍼의 자리를 대신한 것을 주님께대한 극악무도한 모독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단어를 바꿈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타락의 주인공으로 만들게 된 것입니다.
    심어지 NASB는 난외주에 사 14:12의 참조구절로 벧후 1:19을 제시하여 본문이 루시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임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맛소라 본문을 확인하셨다고 하시는데 님께서 보신 맛소라 본문은 부패한 본문입니다.(BHS) 구약 성경의 텍스트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20세기 초까지는 유대인들이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순수하게 보존했기 때문에 전통 맛소라 본문(Ben Chayyim Masoretic Text)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구약은 바로 이 본문에서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1937년에 히틀러 수하에서 일하던 키텔(Rudolph Kittel)이 전통 마소라 본문을 페이지마다 평균 15-20군데씩 수정하여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iblia Hebraica)를 편찬했고 이 본문은 후에 1967/1977년판 슈트트가르트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HS)로 개정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같은 변화는 구약 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 약 20,000군데가 수정되었으며, NIV나 NASB등 모든 현대 성서들이 BHS를 근거로 구약을 번역했기 때문에 이러한 개정 내용이 그대로 그 안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다시말해 마소라 본문이라고 해서 다 같지 않으며, 어느 마소라 본문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구약 성경의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해서 성경의 무오성과 최종권위 그리고 사해 사본에 대한 것, 시님 땅 그리고 오래된 사본이 더 권위가 있는가? 등등 더 나누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다음에 주님께서 원하시면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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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플라오트 2007.08.17 00:37

    일단 귀한 말씀 정말 감사드립니다. 많이 아시는 것 같아서 제가 좀 더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궁금한 점 몇가지만 질문드릴께요.. 일단 저는 제가 틀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들은 현대 번역자들 입장을 대변하여 말한 것이예요. ^^

    1. 히브리어 사전 중에 헬렐이 루시퍼를 지칭하는 것으로 뜻이 적혀있는 사전이 있는지 궁금해요.. 제가 가진 사전(BDB 등..)에는 헬렐이 공통 남성 단수 절대형으로써 "a shining one"이라고 되어있네요.. 헬렐이 루시퍼 또는 사탄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여져있는 사전을 알려주시면 제가 확인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KJV가 수많은 고대 역본들과 일치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람어 역본인 탈굼역에는 이사야 14:12에 분명히 "코카브"로 등장합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해요. 탈굼역본도 변개된 것으로 보나요?

    3. 새벽별을 사용하려면 하나님께서 '보케르 코카브'로 사용하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 문제는 언어의 차이로 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영어로는 yellow 하나만 있더라도 우리나라 말에는 노랗다, 누리끼리하다 등등 많은 표현이 있잖아요.. 당장 히브리어 성경만 봐도 다른 단어들도 그런 식으로 많이 사용했어요. 남편을 지칭하는 단어만 봐도 여러가지로 사용하잖아요. 왜 하나님은 굳이 하나의 뜻을 표현하는데 여러 단어를 사용하셨나요? 부정적인 늬앙스를 풍기는 '바알(남편)'이라는 단어 같은건 안써도 되지 않았을까요?

    4. 그런 논리로 말한다면 왜 하나님은 루시퍼를 굳이 '헬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그리고 만약 헬렐이 루시퍼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라면 왜 '헬렐'이란 이름 그대로 전승되지 않고 '루시퍼'로 바뀌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사탄은 히브리어로도 사탄이 그대로 전승되었는데 말이예요..
     
    5. 라틴어 사전에는 'lucifer'의 뜻에 '샛별'이라는 뜻이 있어요.. 이런 뜻이 왜 파생되어 나온건가요? 후기의 사람들이 집어넣은 것인가요? 그럼 다른 라틴어 글에는 lucifer가 샛별이란 뜻으로 한번도 사용 안되었을까요?

    6. 혹시 TR 헬라어 본문에는 뭐라고 번역되어 있나요? '에오스포로스' 말고 다른 단어로 적혀있나요? 헬라어 '에오스포로스' 역시 원래는 샛별이라는 뜻이고, 새벽에 뜨는 금성을 말하기도 하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에오스)의 자녀(에오스포로스)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별에다가 신들을 갖다붙이기 좋아하는 그리스인들이 만든 신화이겠지요..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라틴어로 번역된 lucifer라는 단어가 발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혹시 TR 본문에 다르게 적혀 있다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더불어 벤 하임 맛소라 본문에는 뭐라고 적혀있는지 궁금해요.

    7. 루시퍼 이야기가 어디에서 근거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KJV에도 단 한번 등장한다는 '루시퍼'가 타락한 천사라는 것은 어디에 근거한것인지 궁금해요. 상상력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면, 완전한 성경인 KJV에서는 타락한 천사 루시퍼에 대한 설명이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단지 예수님이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신 것 때문인가요? 여기에도 타락한 천사의 이야기는 없는데 타락한 천사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8. 맛소라 본문을 봤다고 하는 것은 어짜피 벤 하임 본문(말씀하신 전통 맛소라 본문)과 동일한 단어를 사용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일일히 BH의 역사를 나열할 필요도 없었구요. 실제로 제가 언급한 단어들은 모두 같은 단어를 사용할텐데요. 전통 맛소라 본문에 대한 비판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건 예전 벤 아셰르 본문이 발견되기 이전 이야기 아닌가요? ^^;; 벤 하임 본문이 확실한 사본이라면, 히브리 대학에서 벤 아셰르 본문을 근간으로 하는 레닌그라드사본과, 알렢포 사본, 카이로 사본 등을 더 정확한 본문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키텔이 작업한 BHK는 "레닌그라드 사본"을 사용한 것이지 전통 맛소라 본문(=벤 하임)을 수정한 것이 아닐텐데요.. BHK, BHS, BHQ 등등 레닌그라드 사본에서 일체 점 하나라도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원문 그대로 보존하였고, 각주를 따로 달아서 최신 연구결과를 반영했을 뿐이죠.(레닌그라드 사본이 더 오래된 본문일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모든 성경을 보존하고 있는 사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전통 본문을 고쳤다고 말하는지 궁금합니다. 애초에 전통 본문을 사용조차 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정확한 시비를 가리려면, '벤 하임 가문이 수집한 맛소라 본문'이 더 정확한지, '벤 아셰르 가문이 수집한 맛소라 본문'이 더 정확한지를 이야기해야 되지 않나요? 그리고 전통 본문이라는 단어 때문에 자칫 잘못 알 수 있는데, "벤 하임 본문"을 전통 본문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오리지널 본문이라서 전통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필사본들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먼저 발견된 필사본이기 때문에 먼저 사용했고 그래서 전통 본문이라고 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원문 편집자들이 1판과 2판에서는 '벤 하임 본문'을 사용했고(이것을 KJV가 번역을 했죠.), '벤아셰르 본문'을 발견한 이후 3판부터 벤아셰르 본문을 사용했지요. 따라서 올바를 주장이 되려면, '벤하임이 오리지날에 가깝다는 것'을 증명하는 식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권위있게 여기는 본문 자체가 서로 다른데 굳이 사실을 왜곡하여 "키텔이 전통본문을 수정했다"고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본의 차이를 숨길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요? 교회 홈페이지의 글들도 모두 그렇게 흘러가더군요.. 차라리 '벤아셰르 본문'이 '벤하임 본문'에서 변개시킨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 설득력있지 않을까요? 벤아셰르 본문이 더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하겠네요.. 마치 BHS가 변질되었다는 것을 가정하고 필요한 정보를 골라 이리저리 이야기를 끼워맞춘 것으로 보여서 마음이 개운치 않습니다.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낱낱이 다 말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양심적인 글의 전개라고 생각해요.. 아무튼 이에 대한 입장이 어떠신지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이것저것 질문이 많아서 죄송합니다. ㅠㅠ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 확실히 알게 되면 저에게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해서 무례하게 질문을 드립니다. 불쾌하게 들리셨다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신다면 '시님'에 대해서도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맛소라 본문(전통 본문도 마찬가지로)에 틀린 표기가 있는 것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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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길 2007.08.17 00:37
    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먼저 히브리어, 헬라어, 렉시콘(어휘집)등을 이야기하기 앞서, 제가 궁금한게 있습니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주십시오. 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요? 진실된 신자인가요? 이 질문의 이유는 최근에 발견된 고고학적인 유물들과 언어학적인 지식, 렉시콘, 신학자들(복음주의나 근본주의 신학자들이 아닌 자유주의 혹은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의 지성을 가지고 자꾸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의심하는 모습때문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의 권위를 그대로 인정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구약 성경을 인용하실 때, 그대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필사본을 말합니다. 원본은 상실된지 오래되었겠죠. 예수님께서는 '이 본문은 시리아 페쉬타역본에는 이렇게 되어 있는데, 최근에 발굴된 유물과는 일치하지않으며, 언어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이 구절은 70인역이나 콥틱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어휘집에는 그런 뜻이 아니다. 등등등'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런 주님을 믿고 따르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으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대속을 이루셨다는 사실을 믿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배제한채 신학자들의 의견이나, 고고학적, 언어학적 자료들을 가지고 인간의 지성이 최종권위가 되어 원문비평을 논하면 아무의미가 없습니다. 
    님에게 있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신정통주의자들,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따르고 계십니까?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부분들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고고학이나 언어학, 오늘날 발굴되는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을 비롯하여, 물을 포도즙으로 만드시고, 물위를 걸으시며, 죽은 자를 살리신 것과 같은 기적들을 믿지 않습니다. 혹시 님은 어떠신가요?
    제가 이런 글들을 쓰는 이유는 님의 신학적 근거와 기초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모든 교리와 신학의 출처는 성경이되어야 함에도, 반대가 된 것같습니다. 교회의 역사 가운데 놀라운 부흥과 대각성을 일으킨 설교자들이 성경에 대해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십시오.  
    지금까지 존재하는 필사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헬라어 텍스트만 해도 수십가지가 있습니다. 공인본문 내에서도 스테파누스, 베자, 엘지버 등등 여러 본문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필사본들과 텍스트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헤아려 보면서 진리가 무엇인지 알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고학적 발굴들과 유물들, 렉시콘을 이용해서 진리를 고치고 변경시키고,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단순히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계신인 성경을 영감으로 무오하게 우리에게 주셨으며, 주신 말씀들(단어들)을 흠없이 보존하셨다는 말씀을 신뢰함으로 오히려 그러한 자료들을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모든것을 판단해야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또 안성식 형제님께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자료들 그것이 과학이 되었든, 고고학이되었든, 언어학이되었든, 정치학이 되었든,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의 단순한 믿음입니다. 성경을 믿는 자들의 믿음은 변치 않는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밝혀진 자료들을 통해서 성경을 수정하고, 권위를 부정하며 성경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고 믿는다면, 절대적인 진리에 대한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님께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읽어 보시면 많은 부분 님의 질문들에 답을 얻으실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됩니다. 원서를 읽으실 수 있다면 아마존에서 주문하시면 될 것입니다. 아마존에 없으면, 인터넷에 조회하시면 금방 구입할 수 있을 겁니다.
    - English Bible Manuscript Evidence. by Robert J. Sargent
    - Early Manuscripts(Church Fathers) and the Authorized Version.(2권) by Dr. Jack Moorman
    - NEW AGE BIBLE VERSIONS(현대 성서와 뉴에이지로 출간) by Gail Riplinger
    - The language of King James Bible, In Awe of thy word.(2권) by Gail Riplinger
    - Let's weigh the evidence(킹제임스 성경 길라잡이로 출간) by 베리 버튼
    - King James Version Defended(킹제임스 성경의 변호) by Edward Hills
    -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by Dr. Waite

    언제 직접 안성식 형제님과 한번 만나뵈었으면 좋겠네요. 구원간증도 나누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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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플라오트 2007.08.17 00:37
    신경써서 답변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진짜 궁금한 것은 번호를 달아서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자꾸 말씀의 권위를 무너뜨리려고 하신다고 하는데 일단 그 말씀의 권위를 바로 세워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배제한체 신학자들이나 고고학자들의 의견을 따른다니요.. 애초에 TR 본문들도 신학자, 고고학자에 의해 작업된 것 아닌가요? 자유주의자들이 성경의 기적들을 믿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일부 극단적 자유주의자들의 생각일뿐입니다. 제가 가르침을 받은 교수님들을 비롯하여 제가 알고 있는 신학자들은 모두 예수님의 기적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개신교회에 속해있는 신학자들도 그런 것들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자꾸만 자꾸만 모든 교리의 출처는 성경이 되어야 하신다고 하는데 신학자들도 모조리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꾸만 하나님을 믿느냐  말씀을 믿느냐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려면 처음부터 히브리어를 사용하면서 공격을하거나 자기 주장을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필요한 것만 학문을 이용해서 주장하고, 입장이 반대되는 것은 학문적으로 반박하지 않고 믿음을 강조하는 것인가?>입니다. 저 또한 예수님의 하신 기적들 다 믿습니다. 동정녀 탄생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 맞습니다. 제가 언제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했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KJV의 절대성을 부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형제님도 하나님의 말씀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KJV의 절대성을 주장하셔야지요. 제 눈에는 자꾸 피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앞에 번호 달아 질문한 것은 왜 답변해주시지 않는건가요?

    저는 이곳에 와서 우연히 글을 읽기까지 KJV에 관한 논란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독립침례교회가 있다는 것도 애초에 몰랐구요. 다만 이 곳 홈페이지, 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여기저기에서 글을 읽으면서 오늘날 번역자들이 왜 그렇게 번역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길래 저는 진짜로 궁금해하는 것인줄 알고 현대 학자가 그렇게 번역한 이유에 대한 설명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교회 홈페이지에 가서 또 한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문'을 이용해서 일부 특정한 것을 부풀리고 사실을 왜곡시켜가면서 오로지 KJV의 절대성만 이야기하고 있더군요. 처음부터 '학문'적인 것을 말하지 않았다면 저는 그러려니하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별로 똑똑하지 않은 제가 봐도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자꾸 보여서 도저히 가만히 못있겠더군요..

    '전통'과 '오리지날'은 의미가 다릅니다. "전통"이라는 명칭을 이용하여 온통 그것이 오리지날인데 학자들이 변개시킨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이 사탄의 이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지 말고 냉정하게 잘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애초에 학자들은 KJV를 신경쓰면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사실"을 밝혀내는데 평생을 바칠 뿐입니다. 그만큼 틀린 것을 틀렸다고 할 수 있을만큼 양심적이라는 말이지요. 이러한 학자들은 기존 교회를 대변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때로는 기존 교회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죠. 반면에 KJV의 글들과 KJV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책들을 보십시오. 온통 다른 것들을 공격하고 KJV를 대변하는 글들입니다. 오직 "전통", "다수 본문"만 주장하면서 다른 번역은 다 가짜라고 이야기합니다. 솔직히 순수하게 학문적 글을 써놓은 책이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내친김에 KJV에서 자랑하는 헬라어 'TR 전통 본문'과 히브리어 'TR 벤카임(=벤하임) 전통 본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때로는 불쾌하실 수도 있지만, 과연 '전통'이라는 단어 하나로 '오리지날'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판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에 제가 틀린 부분이 있다면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 지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실수할 수 있으니까요..

    일단 맛소라 본문입니다. 원래는 히브리어 본문은 자음으로만 되어 있으며, 일부 본문이 아람어로 쓰여진 다니엘서와 에스겔서를 제외하고 모두 전승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500년경에 맛소라 학자들은 팔레스티나 티베리아와 바빌로니아 수라에 학교를 세우고 맛소라 본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모음체계를 만들어 붙이고 각주(대마소라, 소마소라)를 기록한 것도 이 때입니다. 그 각주를 자세히 설명한 '세펠 토라'라는 책과 '소페림'이라는 책도 따로 만들었지요. 그리고는 이후로 맛소라 본문이 전승되기 시작했습니다.

    맛소라 본문을 전승시킨 가문은 대표적으로 두 가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론 벤 아셰르 가문'이고, 하나는 '벤 납달리' 가문입니다. 9~10세기의 가문들입니다. (그 이전 맛소라 본문은 보존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14세기에 와서 두 가문의 전통이 합해져 혼합된 맛소라 본문이 있었는데, 그것을 Textus Receptus(공인된 본문)이라고 합니다. 전통본문이라고 말하는 '벤 카임 본문'은 이것을 야콥 벤 카임이 편집한 '제2랍비 성서'입니다. 오늘날 구약성서의 '공인 본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것을 1524-1525년에 다니엘 봄베르크가 베니스에서 출판한 본문을 말하지요. BH 1, 2판도 이것을 토대로 작업하였구요. 벤 아셰르 가문의 본문들이 발견되기 전에는 이 전통본문이 학계에서 최고의 가치로 여겨졌고 모든 성경이 여기에서 번역되었습니다. 물론 개역성경도 이것을 기초로 번역되었구요.

    그런데 '파울 칼레'에 의해서 1008년경의 사본인 '레닌그라드 사본'이 발견된 것입니다. 레닌그라드 사본, 알렙포 사본, 카이로 사본은 모두 벤아셰르 가문에 의해 전승된 본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공인본문'보다 오래된 사본이고, 레닌그라드(1008년)는 구약 전문이 보존되었고, 알렙포(925년)는 구약 전문이 기록되어 있었으나 오경부분이 일부가 불에 타 소실되었으며, 카이로(895년)는 예언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키텔은 제3판을 만들 때 기존 공인 본문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레닌그라드 사본'을 사용한 것이고, 오늘날 학자들도 거의 레닌그라드 사본(한편 알렙포 사본은 현재 히브리 대학에서 이사야 부분을 편찬하기 위해 열심히 복원하고 있는 중이지요.)을 봅니다. 고고학적인 증거를 볼 때 더 정확한 본문임이 분명하기 때문이죠. 키텔이 본문을 수정했다고 하시는데 본문을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틀린 사본을 사용했기 때문에 오늘날 2만 군데가 차이가 난다"라고 해야 정직한 것입니다. 왜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교묘하게 전통본문을 고의로 고친 것처럼 글을 전개하는지 궁금합니다.

    한번의 획기적인 바람이 더 불었는데, 1947-1956년에 걸쳐 쿰란 동굴에서 사해 사본(쿰란 사본)을 발견한 것입니다. 맛소라 본문보다도 천 년 이상 오래된 BC 1세기경의 본문입니다. 따라서 모음은 하나도 찍혀있지 않고 자음으로만 되어 있지요.. 책별(이사야, 예레미야 이런 식으로)로 두루마리가 여러 개(202개)가 발견되었는데, 아쉽게도 모든 본문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참고만 합니다. 맛소라 본문에서 뜻을 모르거나 모호한 경우에 참고하는 것이지요. 번역할 때 이렇게 다른 사본을 참고하여 수정을 한 경우에는 무조건 각주에 표시를 해둡니다. 절대 KJV에서 말하는 것처럼 고의로 변개하지 않습니다.

    이번엔 신약성경 헬라어 TR 본문입니다. 일단 95%가 일치한다는 주장(이송오 목사님은 85%라고 하더군요)도 어폐가 있습니다. 다수본문 TR이 서로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데 어떻게 KJV와 다수본문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말입니까? "일치"라는 단어의 관용성을 이용해서 고의로 주장을 극대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KJV는 헬라어 필사본의 85-90%에 달하는 TR 본문을 기준으로 번역했다."라고 말해야 정직한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TR을 편집한 사람은 1469-1536년의 에라스무스입니다. 그 이전에는 판매용으로 제작된 헬라어 성경이 없었기 때문에, '프로벤'이라는 인쇄업자가 에라스무스에게 편집작업을 부탁한 것이지요. 그래서 에라스무스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과 스위스 바젤 대학 등에서 헬라어 사본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12세기경의 사본 5권밖에 입수하지 못했지요. 그 중 요한계시록을 포함한 사본은 1권뿐이었고 그것도 마지막 6절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출판을 위해 라틴어 번역인 벌게이트(Vulgate)를 헬라어로 '역번역'했습니다.(에라스무스가 직접 밝혔습니다.) 1515년 10월 2일에 인쇄가 시작되었고 1516년 3월 1일에 완성되었으며, 너무 급하게 인쇄해서인지 오자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헬라어 성경은 엄청나게 팔려나갔고, 4판에 69인쇄가 발행되었으며, 오자를 고치면서 스테파누스, 베자, 엘제비르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개정되었습니다. 너무나 불티나게 팔렸기 때문에 엘제비르가 2판 서문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본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그 때문에 Textus Receptus 또는 Received Text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TR이 계속해서 편찬되었기 때문에 85-95%의 다수필사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TR은 원문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 아닙니다. 에라스무스가 5권의 헬라어 사본을 참고하여 편집한 것이고, 오늘날의 학자들은 그 5권의 헬라어 외에 더 발굴된 5400여 개의 사본을 연구하여 번역을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훨씬 이전의 사본들도 많지요. TR은 후기사본의 대다수로써 시리아 계보를 따르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에라스무스를 특별히 사용해서 '정확한' 헬라어 성경 5권을 찾게 하셨고, 또 라틴 Vulgata를 헬라어로 역번역할 때 영감을 주셔서 '정확하게' 번역하게 하셨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믿는다면 정확하게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수사본, 전통사본 하면서 유리한 정보만 이용하지 말고 말이죠.

    KJV는 3세기 반 동안이나 수백만 신도들이 사용했고, 성경번역의 베스트셀러라고 불릴만 합니다. 지금도 미국 가정의 많은 사람들이 KJV를 보고 있구요. 잘 된 번역이고 비교적 정확하게 번역하려고 노력한 성경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성경 자체는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인 것이지 번역 자체가 절대적이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제가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일까요? 학문을 논리적으로 짜맞추는 것으로 보이시나요? 오히려 KJV측이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제가 틀린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십시오. 정확하게 찝어주시면 겸허하게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글이 딱딱하고 공격적인 점 죄송합니다. 저는 혼란이나 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나이어린 녀석이 제 분에 못이겨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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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플라오트 2007.08.17 00:37
    "KJV가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다"를 주장하기 이전에 일단 "KJV가 사용한 TR 본문들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만큼 정확한 본문이다"라고 주장해야되는 것 아닙니까? 고고학적인 신학적 업적만 너무 믿느냐고 하시는데, 애초에 그토록 TR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것은 고고학적이고 신학적 업적 아닌가요? 반대로 말하면 형제님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고고학적인 업적을 믿으시나요? "하나님을 믿느냐?", "말씀을 믿느냐?"는 다른 이단 종교에서도 똑같이 말합니다. 진정한 종교는 신학적 기반 위에 서 있는 종교입니다. 역사적으로 여태까지 무수한 신학자들에 의해서 그렇게 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과거 신학자들에게만 역사하셔서 사용하시다가 갑자기 신학자들을 버린거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TR을 편찬한 에라스무스, 스테파누스, 베자, 엘지버 등은 '신학자, 언어학자, 고고학자'가 아니고 다른 종족인가요? 여기 저기 글들을 보니까 KJV의 번역과정을 설명한 글에는 마치 "47명의 학자"들이 특별한 선택을 받고 '기존 전통을 거스르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당당히 승리한 것처럼 추켜세워놓고, 이제와서는 KJV의 전통을 위협하니까 눅16:15, 시39:5, 시62:9, 말2:8 등의 성경 구절들을 끼워맞춰가면서 학자들을 천대하는 이상한 논리는 어디에서 근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온톤 모순 밖에 안보입니다. 툭하면 믿음이 없다고 합니다. 애초에 믿는 대상이 틀린 것 같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KJV쪽에서는 그냥 'KJV 번역본'을 믿는 것 같습니다.

    또 현대 신학자들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의심하는 모습이 문제라고 하셨는데, 의심이라는 단어를 너무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코페르니쿠스가 천동설을 의심하고 기존 교회의 권위를 무너뜨리면서 지동설을 주장한 것은 사탄의 활동이겠습니까? 신학자들은 '말씀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그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과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성경의 권위를 믿습니다. 어떻게 'KJV'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말씀'의 권위를 무너뜨리는건가요? 애초에 정확한 성경에 대한 이해가 틀리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성경"의 권위를 증명하셨다고 하셨는데, 그 "성경"이 "벤카임, TR, KJV"라는 증거는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이 그 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은 '벤카임 사본'을 읽으셨나요? 그런식으로 얘기한다면 오히려 BC1세기의 쿰란 사본을 사용하셨을 가능성이 많지 않나요? 그 문제부터 이야기하지 않은채 "성경=KJV"라고 무작정 가정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말이 되는 건가요? "성경=코란"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뭐라고 해야할까요? 그들도 "하나님이 말씀을 보존하신다는 약속을 의심하느냐?", "말씀을 믿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는 할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진짜 성경=코란"이라고 믿으니까요. 그렇다면 당연히 "코란"이 진짜인지부터 검증받아야 하듯이, "벤카임 본문"과 "TR"부터 검증받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꾸 다른 이야기를 하셔서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오히려 KJV가 진짜 성경을 가리는데는 관심 없어 보이는군요. 신학자들도 대부분 하나님의 "진짜 말씀"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정확한 말씀을 찾으려고 평생을 바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진짜 말씀"이 무엇이냐에 대한 입장 차이이기 때문에, 그것을 뛰어넘어서 참신자가 맞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 저는 제 입장을 관철시킬 생각이 없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틀리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요.. 제가 말한 모든 것들 믿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다만, 한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현대 번역자들이 고의로 변개했다, 고쳤다'라고 말하지 않고, 차이가 나는 이유를 정확하게 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애초에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믿던지 말이지요. 그냥 KJV만 믿으면 될텐데 무엇 때문에 다른 번역을 공격하는 것입니까? 그것도 고고학적이고 언어학적인 증거를 들어가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제가 이렇게까지 열을 내가면서 'TR의 불완전함'을 이야기하여 KJV의 절대성을 공격하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 입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벤카임'이나 'TR'이 완벽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셔야지요.. "학문적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학문적 근거를 들어서 다른 것을 공격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믿지도 않는 "인간의 학문"을 근거로 다른 성경을 비판하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이죠. 교회 홈페이지의 한 공간을 가득 채운 '고고학적인 필사본에 관한 이야기'는 왜 있는 것인가요? "원래 뜻이 이건데 이걸로 변개시켰다"느니, "고의로 삭제"했다느니 모두 학문적인 근거아닌가요? 그것도 '잘못된' 근거이지요. 다만 사본에 대한 입장이 다른 것인데 마치 '전통본문'을 변개하고 삭제한 것처럼 강조하는 것이 가장 이해가 안 갔던 부분입니다. 모르고 한게 아니라면 분명한 '왜곡'입니다. 제가 여기서 이렇게 열을 내는 것은 형제님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많은 논쟁 글에서 KJV 측에서 상대를 보고 사탄의 활동이다 뭐다 하면서 체계적인 주장없이 인신공격을 하는 것에 어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웹상에서 일반인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KJV 측에서 공식적으로 책에 실은 글의 전문이었습니다. 링크를 시켜드리고 싶은데 다시 못찾겠네요.

    제가 믿음이 없어서 완전한 성경의 존재를 믿지 못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냥 입장이 다른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저는 순전히 호기심으로 '루시퍼'나 '시님'이 궁금했던거였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이야기가 커져버렸네요.. 간단하게라도 루시퍼, 시님에 대해 답변을 해주신다면 흥미롭게(KJV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무엇이 정확할까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더 연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답변 안해주셔도 그것 때문에 KJV의 절대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습니다. 혹시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무튼 제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형제님이 해주셨던 말씀들을 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제 한번 보자고 하셨는데, 직접 만나서는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나이가 어려서 주눅이 드는 것도 있지만, 한국인의 정서상 서로 얼굴보고 논쟁을 하면 다시 볼 때 어색해지기가 쉽거든요. 교리에 관한 이야기도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기회가 있다면 그냥 인사드리고 안부만 묻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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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길 2007.08.17 00:37

    제 이전의 글을 읽고 혹시 마음이 상했다면 사과드립니다. 님께서 진정으로 구원받은 분이라면, 성령님께서 진리를 발견케 해주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봅니다. 내일부터는 글을 쓸 여유가 없을 것 같아서요.

    님의 글을 읽으면서 질문하신 것에 대해 저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나씩 하나씩 확인해서 답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리에 대한 접근 자세가 저와 다른 것 같아서입니다.

    저는 1992년 9월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저는 저를 구원한 생명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의 무오성, 완전성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일단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시면 진리로 받아들였고, 또 그것을 증명하고 지지하는 자료들과 증거들은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면 그것을 거부하고 쓰레기처럼 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 지도와 관련된 책자들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킨 후에 홍해를 건넜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홍해가 아닌, 갈대 숲을 건넌 것처럼 그린 지도책자들은 단호하게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에 대한 저의 자세입니다. 다시 말해 저는 진리에 있어 연역적 방법을 택합니다. 먼저 절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고 그리고 나서 자료들을 수집하고 증거들을 확인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미리 내심 바라는 결론이나 하고 싶은 주장을 설정해 두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결론으로 이미 내려두고 그 말씀을 입증해 줄 자료를 찾거나, 논제를 전개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에 동일한 원리를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모든 성경은 완전하고 무오하다! 이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기에 논증이나 누구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전제로 삼고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튼튼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님께서는 귀납적 방법을 통해서 여러 가지 자료들과 증거들을 통해서 완전한 진리를 찾으려고 시도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저와 다른 것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my words 단어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다른 성경들은 신약에서는 13구절이 아예 사라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시 12:6,7절에서 주님의 말씀들을 영원히 보존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에, 저는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에 부합하는 성경은 하나 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성경 기록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무오하게 주어졌으며, 주의 말씀은 완전하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딤후 3; 시 19) 사도 바울이 말한대로 나는 하나님을 믿나니,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행 27장) 그리고 이 말씀을 있는 사실 그대로 믿는 자에게 효력 있게 역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살전 2:13) 이러한 진리를 먼저 있는 그대로 사실로 믿음으로 연역적인 전제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렇게 완전하고 무오한 절대 기준이 되는 성경을 제 손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읽고 묵상하면서 그 말씀이 얼마나 강력한 권능이 있는지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히 4:12; 다윗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갈망들!을 보십시오. 시 119편)

    저는 ‘개역 성경이 마귀가 부패시킨 성경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나라 신학자들 가운데, 목회자들 가운데 제가 존경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개역성경을 쓰는 신실한 분들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저도 개역성경을 5,6년 읽고 사랑했지요. 그런데 주님께서 저의 눈을 열어주셔서 킹제임스 성경을 만나게 해주셨어요.

    혹시 킹제임스 성경을 쓰는 분들 가운데 지나치게 과격하고 극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혹시 그런 분들의 말이나 글로 인해 마음 상하신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리죠.
    그리고 다시 한번 권면드립니다. 자신이 진리를 찾기 위해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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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플라오트 2007.08.17 00:37
    휴..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해서인지 역시 요점이 잘 전달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일단 연역적 접근의 대상이 될 말씀을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 진리를 '연역적으로 접근'하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이제부터라도 다른 번역에 대해서 '귀납적인 근거'를 들어서 비판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원문 비평'이나 '고고학적인 필사본 자료'등을 근거로 비판하는 것이 자제되었으면 좋겠네요.. 솔직히 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글들도 모조리 귀납적인 접근들입니다. 애초에 제가 화가 났던 부분이 그 부분이었구요.. 따지고 보면 형제님께서 BHS가 부패되었다고 문제 삼으시며 이야기해주신 것도 귀납적인 방법에 속하겠네요.. 앞으로 다른 KJV 분들에게도 '연역적인 접근'을 하도록 권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KJV가 귀납적인 접근을 거부한다면 귀납적으로 쓰여진 교회 홈페이지 글들을 다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성경 본문"에는 다수필사본에 관한 아무런 이야기도 없고, 루시퍼가 '타락한 천사'라고 말하는 것도 없으므로 모두 귀납적인 접근의 결과 맞죠? 마치 제가 연역적인 접근에 대해 귀납적으로 대응한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저는 "모세가 홍해를 건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와 같은 연역적인 말에 반응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왜 귀납적으로 접근하느냐?'라고 말씀하시면 끝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KJV 성경에는 '다수필사본을 신학자들이 고쳤다', 'BHS는 타락했다'라는 말씀도 있나요? 저는 귀납적인 접근에 대해 귀납적인 의견을 드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최초에 문제 삼은 것은 '왜 KJV를 믿느냐?'가 아니라 '왜 학문적인 것을 필요한 것만 부풀려 왜곡하느냐?'였습니다.)

    이래저래 많은 말을 했는데 혹시라도 기분 나쁘신 것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솔직히 제가 KJV나 형제님을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면, KJV의 잘못 번역된 구절들을 짚어가며 공격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했고, 일단 형제님에게서 먼저 '말이 나온 것'(BHS, TR, 신앙, 진짜말씀에 대한 견해 등) 내에서만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정작 저는 그렇게 많은 질문을 쏟아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만 돌아와서 마치 허공에 쏴버린 것 같은 답답함이 많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말씀의 삭제'에 대한 의견을 말씀하셨기에 이에 대해 딱 한가지만 더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KJV에만 있는 말씀에 대해 신학자들은 오히려 후기에 '추가'된 말씀으로 봅니다. 고고학적인 접근과 증거들을 좋아하지 않으실테니 불과 500년 전의 이야기인 직접적으로 와닿을 수 있는 '에라스무스'가 직접 한 말을 예로 들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일서 5:7 말씀을 KJV 한글 번역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그런데 '에라스무스'는 처음 TR출판본에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라는 말씀을 넣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헬라어 사본에는 그런 말씀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카톨릭 교회로 부터 Vulgate에 있는 그 말씀을 뺐다는 것 때문에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라스무스가 직접 변호하기를, "라틴 Vulgate에 쓰여 있는 이 말은 내가 알고 있는 헬라어 사본에는 아무데도 없었다. 만약 이후에 단 한 개의 사본에서라도 발견된다면 후판에 그것을 집어넣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와 같은 사본이 나왔을 때 에라스무스는 자기의 약속대로 후판 TR에서는 저 말씀을 삽입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 발견되었던 사본이 옥스퍼드에 있는 수도승이 라틴 Vulgate에서 그 말을 뽑아다 쓴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Vulgate에 새로 첨가된 말씀을 지웠다가 다시 쓰게 된 셈이지요. 에라스무스가 작업한 TR 이전의 시리아 계보를 포함한 거의 모든 필사본에 저 말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수천개의 헬라어 사본에 이 말이 있는 사본은 딱 3개 뿐이고, 그 3개의 연대는 12세기~13세기, 16세기의 것이었습니다. 교회 홈페이지의 글에서 '귀납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95%의 다수 본문과 일치한다"는 말에 반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없으시면 굳이 답변해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바쁘셔서 못들어오실 수도 있구요.. 써놓고 보니 귀납적인 것을 거부하시기로 했다면 별로 의미없는 질문 같기도 하네요..
  • ?
    니플라오트 2007.08.17 00:37

    그리고 저에게 연역적 접급을 하라고 권면하셨는데 저도 제가 믿는 말씀에서 '연역적인 접근'을 합니다. '진짜 말씀'에 대한 견해가 다른 상태에서 신앙이나 연역적 접근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학자, 고고학자, 언어학자들이 KJV를 공격하기 위해서 연구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KJV 쪽에서 다른 성경을 공격하고 KJV가 절대적이라는 고정관념 안에서 자체 신학이 발전할 가능성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만약 학문을 거부하신다면, 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KJV를 증거하는 학문이나 고고학적인 증거는 보존될 수 없을까요? KJV의 말씀 끼워맞추기식 논리로 "주께서 너무 어려워서 못하실 일"이 무엇입니까? 저는 하나님은 KJV 외에 학문, 논리, 증거 같은 것은 다 외면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하나이고 완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보존해주신 고고학적인 사료, 필사본 등을 통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굳건하게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KJV가 택한 진리는 그렇지 못한 것 같네요.. 무엇이 '먼저'입니까? 일단 '정확한 말씀'을 갖는 것이 먼저입니다. 바울이 성경 변개에 관한 경고를 했다고 했더군요. 오늘날 대부분의 사료와 증거들은 오히려 KJV의 말씀들이 변개되었던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꾸 '하나님의 말씀은 무오하다', '영원히 보존된다'는 등의 성경 말씀을 인용하시는데, 주님은 '말씀'을 보존하신다고 하셨지 'KJV'를 보존하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원리대로라면 '레닌그라드 사본' 등을 이때까지 보존하셨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보존되리라'고 하셨지 '전통적으로 이어지리라'라고 하신 것이 아니니까요. 말씀을 유리하게 해석하고 끼워맞추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제 눈에는 '귀납적인 것'을 주장하기 위해 말씀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구요? 학자들은 분명히 Original Text에서 '일점 일획'도 떨어뜨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후기에 "추가"된 것들을 써넣지 않았을 뿐입니다. 에라스무스가 처음에 그렇게 했던 것처럼 말이죠. 하나님께서 발견하게 해주신 수많은 사료들을 통해 그 구절이 '원래 없었다는 것'이 분명한데 굳이 다시 추가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누가 정직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에라스무스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헬라어 사본에 해당 구절이 없는데, 그것이 Vulgate 역본에 쓰여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써넣었어야 정당한건가요? 무엇을 믿던지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KJV측에 진심으로 바라는 것을 학문이나 성경구절 등을 '자기를 변호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말씀을 순수하게 '연역적'으로 해석하셨다면 저는 반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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