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한 말씀 더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이 메시지를 여러 번 설교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무엇이 하나님의 채찍질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징계요 막대기인지 확실히 이해하고 해온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에 메시지를 전할 때야 비로소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3절을 보면 죄인들의 거역(contradicti-on. 모순이라 번역되기도 함)이란 말이 나오고 14절에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라고 하십니다. 이 두 말씀을 잘 묵상해보면 14절의 “모든 사람”에는 우리를 거슬러 거역하는 죄인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의 막대기는 다름 아닌 당신의 바로 옆자리에 지금 앉아있는 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살고 함께 교제하고 함께 일하고 있는 가까이 있는 죄인들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도록 허락하셔서 결국 우리로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나고, 상처받고, 눈물을 흘리도록 만드십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우리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성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 믿는 사람이나, 세상이나, 마귀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러한 것들로는 상처를 입지 않으니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겁니다. 반드시 그런 사람이어야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뒤에서 남의 얘기 하지 말라”는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실제로 우리 뒤에서 “수군대는”것으로 인해 상처받고 그럴지라도 그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해 줄 수 있을 때까지는 그 설교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반당하고, 버림받고, 속임 당하고, 억울함을 겪는 그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그런 사람들과 화평함을(peace) 유지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부드럽게(gentleness) 대해주고 선하게(goodness) 대해줄때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상처를 가져다 줄 사람이 우리의 성숙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남편이 옳지 않기 때문에 남편으로부터 떠나거나 부인이 잘못됐다고 해서 부인을 버리거나 아빠엄마가 완벽하지 못하다고 집을 나가거나 교회 사람들이 당연히 갖추어야 할 모습이 아니라고 해서 교회를 떠나버린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신의 손에 들고서 당신을 채찍질하셔서 당신으로 울부짖도록 만드시며 울부짖는다고 채찍을 거두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늘어진 손을 들고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똑바로 서서 입술을 깨물고 견뎌내라. 그래야 네가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징계가 싫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싫고 사람들이 제 아내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싫고 제 자식들을 상처 주는 것도 싫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이 징계 안에 들어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모든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징계를 싫어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징계의 막대기만 보고 있지 그 막대기가 하나님의 손에 쥐어져 있으며 하나님께서 마음을 정하시고 목표를 갖고 징계하신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징계의 폭풍이 몰아칠 때 그것은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툼이나, 논쟁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가르치셔서 단지 느낌(feeling)의 영역에서 살고 싶어 하는 육신적 사람 그 이상의 “누군”가로 나를 만드시고자 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누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는지 아십니까? 자신의 등을 채찍으로 내리친 사람들을 위해 그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누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자신의 수염을 뽑아버린 자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주님께서 누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자신의 얼굴을 주먹으로 친 자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까! 그 분은 이런 자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도록 십자가위에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는 못해요”라고 말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으로 어릴 때와 달리 영적인 청년이 되면 강력한 설교도하고 마귀도 물리치고 영적싸움도 해낼 것입니다. 문제는 아직도 저는 완전하게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못되며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철저히 구비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딤후3:17)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잘 들어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여러분들 중 한 두 사람을 사용해서 제 마음을 계속해서 상하게 만드실 것이며 저를 결국 주님께 나아가 이렇게 하소연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저는 그들에게 화가 납니다. 그러지 말아야한다고, 그들을 용서하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시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그들을 사랑하라고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하시면서 저에게 회초리를 대실 것입니다. 자 11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에 따르면 징계는 그 당시에는 기쁜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다고 했지요. 12절을 보세요. 늘어진 손,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고 하시지요. 13절도 보면 발을 위하여 곧은 행로를 만들라고 하시지요. 14절을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징계와 관련된 요소들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괴롭히는 자, 내게 상처를 주는 자, 이런 사람들과 화평하게 지내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표란 말씀입니다. 내가 이런 수준에 도달하면 마음 상할 일은 무엇이며, 그 누구와 관계를 끊을 일은 무엇이며 그 누구에게 등 돌일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수준에 도달했을 때 나는 디모데후서3장17절 말씀대로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철저히 구비된 셈입니다.


잠언 16장7절을 보십시다.

“사람의 길들이 주를 기쁘시게 하면 그분께서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와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참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여전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평안하지요.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 모두가 나를 잘 대해주도록 하셔서 나로 하여금 삶을 향유토록 하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내가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변화시키셔서 나로 하여금 삶을 향유토록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변화시키셔서 우리가 행복하게 되도록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변화시키겠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변화되든 안 되든 너는 모두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표입니다. 자, 어머니, 아버지 되신 분들 우리 모두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대로 아이들에게 합당한 관심을 갖고 합당한 징계를 하십시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도 바로 동일한 방식으로 여러분의 생애가운데 역사하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당신이 당신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시며 약간의 고통이 있더라도 그것이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오늘 설교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상처를 받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요. 하여간 좀 혼돈스럽습니다.”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일은 없으시기 바랍니다. 전보다는 그래도 약간 더 거룩해지고 주님을 조금은 더 닮아 가실 것입니다. 회초리에 초점을 맞추시지 말고 그 회초리를 사랑이 가득한 손에 들고 계시는 주님께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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